출국 D-1

어학연수 2013. 5. 19. 01:26

D-1.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출국 전날이 왔다. 두번 세번을 더 확인하고, 체크리스트도 두 번이나 체크했고, 당장 가서 묶게 될 호스텔 예약도 확인했다. 정말 떠나는 것이다. 아무도 없고, 말도 안통하는 곳으로. 덜덜 떨릴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내일도 별 다를 일 없을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해놓은 계란찜을 맛나게 먹고, 뒹굴뒹굴 거리며 영화를 보고, 공부하고, 샌프란시스코 구경하고, 저녁에 산책 잠깐 하다 8시쯤에 돌아오면 내가 먹고 싶었던 것들을 또 잔뜩 펼쳐놓아 가족들과 맛있게 먹겠지. 



흥분되고 기대되지 않았으며, 긴장되고 초조하지도 않았던 그런 태연한 마음이었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꼴딱 밤을 새버린 나를 회상해 보면, 내일 출국이라고 말해주는 모든 주변 사물의 힌트들을 그저 거부했던 것 같다. 엄마가 주었던 편지와 일주일 치 생활비. 친구들의 연락. 내 침대 옆에 항상 있는 허벅지까지 오는 살벌하게 무거운 이민가방. 텅 비어있는 옷장. 다이어리에 써있는 D-1. 풀충전된 카메라. 묘하게 무거웠던 마지막 저녁식사까지. 그렇게 애써 무시해 가며 긴긴 밤을 보냈다.

posted by 노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