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 미국에 가지 않을래?'



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공부, 연극동아리, 마사회 · 재택 아르바이트 및 기타 잡다한 일에 오지랖 넓게 참여하며 대학생활 3/4을 말 그대로 하얗게 불 태운 후, 휴학을 하고 영어학원비를 벌기 위해 강남 모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두 달 째 되던 때였다. 2012년 2월. 물론 어학연수는 이제 더이상 절대적으로 신기한 존재가 되진 않았다, 특히나 내 나이때가 가장 적기라 생각한 친구들이 떠난다며 비행기 티켓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나? 내가? 이렇게 갑자기 그게 되는거야? 앞으로 엄청나게 어깨에 짊어지게 될 금액에 대한 부담감에 앞서 첫째로 들었던 생각은 '왜?'였다.



감사합니다. 저 가겠습니다. 말이 나오자 마자 덥썩 잡아 물긴 했으나 그 때가 2월 말이었고, 예정된 출국일은 6월 초였다. 3달 남짓 밖에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 나이 24살. 영어? ㄴㄴ, 토익 · 토플 점수? ㄴㄴ, 미국 내 인맥? 전무. 정말 깔끔하게 어리버리였다. 그 당시 내 영어가 어느정도 였냐면 'She goes to school.'과 'She's gone to school.'과 'She's going to school.'의 차이점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대학은 어떻게 간 걸까..) 여행은 가족들과 다닌 걸 제외하면 내일로여행 1번이 유일한 경력, 그나마 친구들과 다같이 간 지라 혼자 어딜 돌아다닌 경력이 전혀 없었다. 급하게 Grammar In Use를 구해 깨작깨작 채우기 시작했고, 어쨋든 정신 없지만 확실히 문제는 이게 다 인 줄 알았다. 





2. 이것도, 저것도, 그 것 까지 혹시 모르니 다 가져오세요. 미국이잖아요.



미국 비자를 발급하는 건 다른 나라보다 좀 더 복잡하고 어렵다. 사실 한 마디로 '우리집은 미국에서 돈 쓸 정도로 여유가 있고 나는 나름 한국에서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잘 살 던 한국 버리고 굳이 미국에서 눌러 앉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다. 일단 세금 증명서를 가져와 보라는 에이전시 말에 아무 생각없이 끊어갔던 세금 증명서를 본 내 담당자는 본격적으로 나를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집은 아버지가 오랜 고생 끝에 일궈낸 사업이 성공적으로 시작을 알린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작년 세금납부 현황을 알려주는 세금 증명서에는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I-20뿐만 아니라 온갖 자료를 빼곡하게 챙겨야 했다. 정신없는 한 달이 시작된 것이다. 에이전시에 들릴 때마다 자료가 까이고, 요구사항은 늘어났고, 통장잔액내용 증명서에 내 통장 안에 수천만원이 들어 한 것을 인증하고 나서야 미국대사관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예상 질문에 대한 영어답변도 생각했고, 뒤로 갈 수록 거절당하는 사례가 많다는 소문 때문에 입장시간 45분 전에 들려 한참을 기다렸다가 들어가 세번째로 인터뷰에 응했다. 기다리는 도중에는 어떤 아줌마가 오시더니 심심하셨는지 자신이 여행을 정말 자주 간다는 얘기를 나에게 뜬금없이 하기 시작했다. 이번 비행기도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가는 거라고, 이 정도로 많이 다녔다고 엄청 자랑 하시길래 '저도 마일리지로 가는 거에요' 라고 하니까 '아.. 그래?' 하시더니 자리를 옮기셨다. 이 때 이게 정말 별게 아니었구나 하고 맘을 놓았어야 했는데! 



뭐 결론 적으로는 한국어 통역사분이 계셨고, 내 자료는 그렇게 까지 궁금하지도 않았는지 반 정도 보시더니 내가 인터뷰를 시작 한 지 2분만에 통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약간 빡치네, 그렇게 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었는데.. 이 미국 비자 인터뷰 때문에 출발하는 비행기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비행기 까지 미리 구매를 했었는데, 그걸 보지도 않으셨다! 게다가 이게 나중에 미국에서 집에 돌아 올 때 즈음에 골머리를 무척이나 썩게 만들었다. 그 얘기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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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 까지

일상 2013. 1. 22. 14:56

중학교 3학년때 네이버 블로그를 처음 접했을 때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생각, 사고방식, 이야기, 때때로 중학생 다운 직설적이고 오글거리는 포스트 하나하나에도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내 글을 퍼가곤 했으니. 몇년 전 '블로그를 다시 해보자!' 라고 마음을 먹고 내 블로그 계정을 4년만에 다시 찾아갔던 적이 있는데, 내 상상과는 달리 말도 안되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담배를 피는 사람은 의존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가까이 해선 안된다 (물론 중학교때 이런 말투로 글을 쓰진 않았다) 부터 시작해서 사랑에 대한 심난한 고찰, 그때는 누구나 한번쯤 분노하는 대한민국의 교육방침, 오글거리는 100문100답, 가족 문제까지. 어휴.. 누가 볼까 무서워 300개가 육박하는 그 글들을 미련없이 싹! 다 지워버렸다. 무슨 생각이 폭팔해서 그런 글들을 쉴세 없이 써내려 갔을 수 있었을까?


뭐가 그리 할말이 많았을까 싶어 내 역사를 잠시 살펴보니 난 초등학교 때 시인과 바둑기사를 꿈꾸었고, 중학교 때 파티플래너, 성우, 국악고 진학을 원했고, 고등학교때 우연히 들어간 방송반에서 엔지니어에 대한 열망도 잠깐 생겼지만 뜬금없이 미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미술에 대한 낮은 재능과 그에 걸맞는 낮은 수능성적을 쿨하게 인정하고 현명하게 포기 한 후 재수를 해서 무려 200점을 올려 들어간 대학의 학과는 심리학이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연극학회에 들어가 연기도 하고, 대본도 쓰고, 부대표가 되어 연출을 돕기도 했다. 그리고 바이럴마케팅에 뛰어들어 소위 말하는 '댓글알바'도 해봤고, 미국어학연수에 가서는 힌두교 사원에서 무려 5개월을 살았다. 이렇게 정신없는 삶을 잘도 살아왔구나 생각도 들고 이렇게나 남들과 다른 걸 추구했으니 할말은 정말 많았겠구나 싶기도 하더라.


단순히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시작했던 독특한 길들이 나에게 차곡차곡 쌓여 있지만 나는 그게 뭔지 알 길이 없어 그 덩어리를 정리하고자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트위터도 하고 있고,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싸이월드도 아직 하고 있다. 각자의 목적성이 다 있기에 통합할 생각은 없지만 다 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하고 싶은얘기가 통합이 힘들어 특성 컨셉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진짜 정신산만.. 시간이 갈 수록 지워지는 게시판이 있을것 같다. 일단 시작했으니 난 이제 모르겠다


* 블로그 이름의 의미

'Be good, Do good'은 내가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지냈던 힌두교사원에서 배웠던 찬가의 가사 중 일부이다. 

정확히는 'Be good, do good, be kind, be compassionate'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고, 올바른 행동과 이타적인 삶을 강조했던 사원생활에 정말 걸맞는 대사이다 싶어 사실 6개월 전에 이 가사를 보자마자 블로그의 이름으로 정해야겠다 생각했다. 어쩌면 제 생각으로만으로 채워지는 욕망표출용 블로그가 아니라, 나름대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개인적 소망이 투영 된 것 같기도.. 쉽게 말해 이건 내 삶의 모토가 된 짧은 문장이고, 앞으로도 이걸 담고 살고 싶어 블로그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다. 힌두교 사원의 이야기는 어학연수 생활 이야기 중 틈틈히 다룰 예정!

posted by 노닝